얼마전에 막을 내렸던 소치 올림픽 피겨스케이팅 여자 개인전 금메달은 러시아의 아델리나 소트니코바에게 돌아갔습니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은 소트니코바가 아닌 한국의 김연아를 세계 최고의 피겨스케이팅 여자 선수라고 생각할 것입니다. 소트니코바 금메달이 러시아 홈 어드벤티지 영향을 받았던 이유와 더불어 그동안 김연아가 세계 무대에서 환상의 연기를 과시했던 아우라가 여전히 많은 사람들에게 생생하게 기억되었기 때문입니다.
김연아의 올림픽 2연패가 무산된 것은 아쉬운 일입니다. 지금까지 올림픽 2회 연속 우승에 성공했던 선수가 단 2명(소냐 헤니 3연패, 카타리나 비트 2연패)인데 어쩌면 김연아도 이들과 같은 반열에 오를 수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김연아는 소치 올림픽 은메달을 통해 피겨스케이팅 여자 선수 중에서 지금까지 누구도 이루지 못한 대기록을 달성했습니다. 바로 올포디움(All Podium)입니다.
[사진=김연아 (C) 소치 올림픽 모바일 공식 홈페이지 프로필 사진(m.sochi2014.com)]
올포디움은 모든 대회에서 3위 이내의 성적을 나타냈던 기록을 의미합니다. 김연아는 지금까지 출전했던 모든 세계 대회에서 3위 안에 포함됐습니다. 노비스와 주니어, 시니어 무대에 걸쳐 항상 TOP3에 있었죠. 피겨스케이팅 100년 역사상 여자 선수가 개인전에서 올포디움을 달성했던 사례는 없었습니다. 김연아가 세계 최초인 것이죠. 다른 종목에서도 국제 대회에서 항상 3등 안에 드는 선수는 아마도 흔치 않을 겁니다. 김연아 위엄이 느껴집니다.
김연아 올포디움이 더욱 대단한 것은 한국이 불과 몇 년전까지 피겨스케이팅 볼모지였기 때문입니다. 지금까지 피겨스케이팅 간판 스타가 사실상 없었을 뿐만 아니라 제대로된 시설을 갖춘 빙상장도 드물었습니다. 시설에 대해서는 지금도 크게 달라지지 않은 것으로 압니다. 김연아도 예전에는 롯데월드 아이스링크에서 훈련했었죠. 자신의 라이벌 일본의 아사다 마오가 개인 연습장에서 훈련했던 것과 대조적입니다. 이렇게 열악한 환경에서 세계적인 피겨스케이팅 선수가 탄생한 것은 기적이라는 표현이 결코 과장되지 않습니다.
어쩌면 김연아는 피겨스케이팅 100년 역사상 최고의 선수일지 모른다는 생각이 듭니다. 과거에 세계 무대를 주름 잡았던 선수들이 여럿 있었던 특성상 이러한 표현에 어색함을 느끼는 분들이 많을 겁니다. 김연아는 이들과 동시대에 활동했던 인물이 아니니까요. 축구에서 리오넬 메시와 펠레의 실력을 비교하는 것이 적절치 않은 것처럼 말입니다.
하지만 저의 생각은 다릅니다. 피겨스케이팅 변방국에서 김연아라는 세계 최고의 선수가 등장했기 때문입니다. 그것도 실력 하나로 피겨스케이팅 세계 1인자가 되었고 한동안 그 자리를 지켰습니다. 그녀가 4년 전 벤쿠버 올림픽에서 경신했던 세계 신기록은 지금도 깨지지 않았고요. 소트니코바 같은 개최국 프리미엄에 의해 올림픽 금메달을 따냈던 것과는 격이 다릅니다. 김연아가 지금까지 출전했던 세계 대회 대부분은 한국이 아닌 곳에서 진행되었죠. 그녀의 올포디움 달성은 세계 피겨스케이팅의 영원한 전설로 기억될 결정타가 되었고요.
김연아는 소치 올림픽을 끝으로 은퇴했습니다. 앞으로 세계 피겨스케이팅에서 김연아에 이어 올포디움을 달성하는 선수가 쉽게 나오지 않을 것 같은 예감입니다. 그러한 유형의 선수가 등장해도 언제쯤 이루어질지 의문이죠. 김연아 경기에 익숙해졌던 우리들 마음속에는 김연아를 역대 세계 최고의 피겨스케이팅 선수로 남게 될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