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이 상대하는 스페인은 주전과 백업 선수와의 기량 차이가 종이 한 장 정도에 불과합니다. 레알 마드리드-FC 바르셀로나 선수들을 합해 총 13명, 그 외 스페인 프리메라리가와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에서 두각을 떨치는 선수들이 한솥밥을 먹는 '최정예 군단' 입니다. 마르코스 세나, 산티아고 카솔라(이상 비야레알) 알바로 네그레도(세비야) 다니엘 구이사(페네르바체) 같은 빼어난 기량을 자랑하는 선수들이 최종 엔트리에 포함되지 못할 정도로 개인 기량 만큼은 세계 최정상급이라 할 수 있습니다.
특히 한국은 박지성이 허벅지 통증으로 결장하기 때문에 객관적인 전력에서 스페인에 밀립니다. 한국의 공격 과정에서 박지성이 차지하는 비중이 절대적이었고, 박지성을 중심으로 하는 공격의 연결고리가 그동안 짜임새있게 형성되었기 때문에 그 공백이 만만찮을 것입니다. 그래서 전력적인 열세를 딛고 스페인전에서 정면 승부를 펼치면 한국이 잦은 실점을 허용할 가능성이 큽니다. 현실적으로, 지난 3월 3일 코트디부아르전에서 선보였던 선 수비-후 역습 전술을 스페인전에서 다시 구사할 것으로 보입니다.
한국이 선보이는 4-2-3-1의 강점은 미드필더진의 두꺼움을 통해 상대 공격을 봉쇄하기 쉬운 이점이 있습니다. 4-4-2의 중앙 미드필더가 4-2-3-1에서는 더블 볼란치의 수비형 미드필더 역할을 맡으면서 상대의 공격 템포를 늦추고, 2선 미드필더들이 적극적인 수비 가담을 통해 압박 및 커버 플레이를 하면서 상대 공격의 예봉을 차단할 수 있습니다. 한국이 수비적인 스타일을 펼칠 것으로 보이는 만큼 미드필더들이 저지선 역할을 충분히 해내야 합니다.
그래서 스페인전에서는 더블 볼란치를 맡을 김정우-김남일의 활약이 중요합니다. 두 선수가 중원에서 호흡을 맞춰 강력한 압박과 세밀한 커팅, 유기적인 커버 플레이를 통해 스페인 특유의 빠른 템포 공격 타이밍을 늦춰야 합니다. 스페인은 한국이 월드컵 본선에서 상대하는 아르헨티나처럼 패스를 통한 템포를 강점으로 삼는 팀이기 때문에 두 명의 수비형 미드필더가 먼저 대형을 갖춰 경기 흐름에서 밀리지 말아야 합니다.
문제는 한국 수비진의 집중력 부족입니다. 지난달 30일 벨라루스전 0-1 패배가 그랬던 것 처럼, 박스 부근과 안쪽에 7명이 몰렸음에도 순간적으로 집중력이 저하되면서 상대 공격수를 놓치고 실점하는 현상이 벌어졌습니다. 그 경기에서 센터백을 맡았던 조용형-이정수 조합은 지난해 11월 세르비아전에서도 집중력 부족으로 실수를 범한 끝에 상대에게 결승골을 헌납했습니다. 90분을 뛰면서 어느 순간에 경기 몰입이 떨어지는 한국 수비수들의 문제는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었습니다.
더욱 걱정되는 것은 스페인과의 후반전입니다. 어느 팀이든 마찬가지겠지만, 스페인은 후반전에 공격적인 선수들을 교체 투입하여 기량과 컨디션을 점검할 것입니다. 그런데 백업 선수들은 월드컵 본선이 얼마 안남았기 때문에 주전 경쟁을 의식할 것입니다. 그래서 한국전에서 자신이 가진 기량을 맘껏 쏟으며 경기에 임할 가능성이 큽니다. 그 선수들은 프리미어리그와 프리메라리가에서 최정상의 기량을 선보였던 저력이 있기 때문에 한국전에서 여유를 부리지 않을 것입니다.
스페인이 한국전에서 어떤 선수를 선발로 기용하고 벤치로 둘지는 알 수 없습니다. 하지만 후반전에 기용될 수 있는 유력 후보들을 꼽아보면 세스크 파브레가스(아스날) 헤수스 나바스(세비야) 후안 마타(발렌시아) 페르난도 요렌테(빌바오) 페드로 로드리게스 레데스마(FC 바르셀로나)에 무게감이 실립니다. 요렌테는 신장 195cm의 타겟맨이며 나머지 선수들은 빠른 문전 침투와 현란한 개인기를 자랑하는 2선 미드필더들 입니다. 문제는 이 선수들이 한국이 공략하기 쉽지 않은 상대라는 것입니다.
한국의 단점은 기습적으로 박스 안쪽으로 쇄도하는 상대 공격 옵션에게 취약하며 뒷 공간을 쉽게 허용합니다. 그래서 협력 수비를 강화할 수 밖에 없었는데 체력이 떨어지면 상대에게 빈 틈을 보일 수 있습니다. 그런데 그 시점이 체력적인 한계가 두드러지는 후반전이 될 가능성이 높다는 점이 한국의 고민입니다. 김정우-김남일의 체력이 90분 동안 버틸 수 있다고 장담할 수 없는데다 특히 김남일의 폼이 전성기 시절에 비해 힘에 부치고 있음을 감안하면 후반전 경기 운영이 위태로우면서 실점을 허용할 위험성이 생깁니다.
특히 파브레가스는 특유의 과감한 움직임을 통해 상대 수비 뒷 공간을 파고들며 많은 골과 어시스트를 생산했던 공격형 미드필더입니다. 아스날에서는 에이스로 활약중이나 스페인 대표팀에서 벤치 멤버로 뛰고 있기 때문에 한국전 맹활약을 통해 주전 눈도장을 받아야 하는 상황에 직면했습니다. 더욱이 스페인이 더블 볼란치를 쓰고 있음을 상기하면 파브레가스가 가벼운 마음으로 공격에 전념할 수 있습니다. 한국이 후반전에 파브레가스를 봉쇄하지 못하면 실점 기회를 내줄 것이 분명합니다.
마타-나바스-페드로 같은 윙어 자원들의 드리블 실력은 군계일학입니다. 마타는 날카로운 왼발과 2선 침투를 즐기는 왼쪽 윙어고, 나바스는 발군의 드리블 돌파와 크로스를 앞세워 공격수에게 절호의 골 기회를 연결하는 오른쪽 윙어입니다. 페드로는 좌우 윙어를 모두 소화할 수 있으며 바르셀로나에서 다져진 문전 침투에 이은 득점에서 알 수 있는 것 처럼 박스 안에서의 절묘한 위치선정과 민첩한 몸놀림을 자랑합니다. 이 선수들이 후반전에 모두 출전하는 것은 아니지만, 기복이 심한 한국의 수비를 무너뜨릴 수 있는 역량을 갖췄습니다.
한국은 신형민-구자철을 최종 엔트리에서 제외하면서 김정우-김남일의 홀딩 능력에 의존할 수 밖에 없는 현실입니다. 기성용은 수비력에 약점을 드러냈고 김재성은 허정무 감독이 공격적인 카드로 활용하는 상황입니다. 그래서 스페인전에서는 후반전을 대비할 수 있는 중원의 대체 카드가 취약합니다. 하지만 스페인이 한국에게 가상의 아르헨티나이며, 아르헨티나가 한국전에서 후반전에 다재다능한 공격 카드를 투입할 수 있음을 상기하면 이번 스페인전에서 면역력을 키워야 합니다. 스페인과의 후반전에서 고비를 넘는다면 월드컵 16강의 꿈이 무르익을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