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 베이징 올림픽 대표팀의 주전 공격수 출신이자 23세 동갑내기인 이근호와 박주영. 한동안 허정무호에서 치열한 포지션 경쟁을 펼쳤던 이들의 ´명암´이 더욱 선명해졌다. 공교롭게도 두 선수는 고교시절 우승 트로피를 양분하던 부평고(이근호)와 청구고(박주영)의 에이스로 활약한 경험이 있어 새로운 라이벌 관계가 형성될 가능성이 짙어졌다.
불과 2006년까지만 해도 한국 축구는 박주영이 대세였다. 그는 K리그 데뷔시즌이었던 2005시즌 30경기서 18골 4도움으로 신인왕을 수상했고 각급 대표팀의 에이스로 자리잡으며 자신의 신드롬을 불러 일으켰다. 반면 이근호는 2005년과 2006년 K리그 출장 8회에 그친데다 2군까지 전전하며 군 입대까지 모색하는 벼랑끝 위기에 놓였었다.
이근호가 인천에서 기회를 잡지 못한 원인은 자신의 스타일 때문. 그는 지난해 5월 14일 한 스포츠 주간 잡지를 통해 "내 스타일이 대구와 잘 맞는 것 같다. 인천은 안전하게 경기하기를 원했고 드리블보다 패스를 원했다. 그러나 나는 저돌적인 성향이어서 대구에서는 공을 잡으면 자유롭게 움직일 수 있다"며 지난해 대구 이적이 자신의 축구 인생에 ´터닝 포인트´가 되었다고 힘주어 말했다. 그는 올해까지 대구 소속으로 54경기 23골 9도움을 기록하며 팀의 중심 공격수로 거듭났다.
그런 이근호와 박주영이 본격적인 경쟁 체제에 접어든 것은 올해 초 허정무호에서 주전 경쟁을 벌인 이후였다. 당시 박주영은 동아시아선수권 중국전서 2골 넣어 한국의 짜릿한 3-2 역전승을 이끈 반면에 이근호는 ´체력이 너무 약하다´는 허정무 감독의 핀잔을 받아 박주영에게 주전에서 밀렸고 지난 3월에는 북한전 엔트리에 포함되지 못하는 불운까지 겪었다.
그러나 이근호는 K리그에서 연일 골을 터뜨리며 앞으로의 기대감을 높였고 박주영이 골대 징크스에서 비롯된 골 결정력 논란에 빠지면서 본격적으로 두 선수의 명암이 엇갈리기 시작했다. 지난 6월에는 박주영이 A매치 4경기서 필드골을 넣지 못해 체면을 구긴 모습을 옆에서 지켜봤던 이근호는 동료에 비해 적은 출장 시간 속에서도 부지런한 움직임으로 한국 공격을 주도하며 자신의 가치를 드높였다.
올림픽대표팀의 에이스로 발돋움한 선수 역시 이근호였다. 올림픽대표팀에서 골을 넣은 4경기 모두 한국의 승리로 끝났기 때문. ´스트라이커는 골로 말한다´는 말이 있듯 그는 스트라이커의 진 면목인 골을 앞세워 단 1골에 그쳤던 박주영을 제치고 박성화호 에이스로서 맹위를 떨쳤다. 당시 박주영은 박성화 감독과의 깊은 관계 때문에 팀 내에서의 위상이 절대적으로 강했으나 골을 터뜨리지 못하면서 공격의 실마리 역할을 다해내지 못했다.
결국 이들의 명암은 베이징 올림픽 이후 희비가 선명하게 엇갈렸다. 이근호는 국가대표팀에 꾸준히 차출되어 허정무 감독의 눈도장을 받는데 성공한 반면 박주영은 지난 6월 대표팀에서의 부진 여파로 아직까지 태극 마크를 달지 못했다. 이근호는 지난달 28일 광주전 2골과 지난 11일 우즈베키스탄전 2골로 여전한 골 감각을 발휘했으나 박주영은 지난달 14일 로리앙전 1골 1도움 이후 5경기 연속 출장했으나 골을 넣는데 실패했다.
더욱이 박주영은 허정무 감독과 박태하 코치가 직접 관전했던 지난달 25일 파리 생제르망전에 출장했으나 이렇다할 활약을 펼치지 못한 끝에 국가대표팀에 합류하는데 실패했다. 그는 지난 7일 귀국 인터뷰서 "국가대표팀에 내 이름이 빠진 것에 아쉬운 것은 없고 내 실력이 모자라서 제외됐다고 생각한다. 앞으로 더 나은 모습을 보여줘야 한다고 생각한다"며 덤덤하게 받아 넘겼다.
물론 반전 가능성도 없지 않다. 박주영이 프랑스 무대에 착실하게 적응하여 맹활약을 펼친다면 다시 허정무호에 합류하여 이근호와 치열한 포지션 경쟁을 펼칠 수 있기 때문. 그러나 서정원과 이상윤, 안정환 같은 자신의 축구 선배들이 프랑스 무대에서 좌절의 쓴맛을 보며 팀을 떠났던 전례가 있어 박주영이 이를 잘 이겨낼지 주목된다.
이근호도 아직 안심할 단계가 아니다. 우즈베키스탄전서 '신영록-정성훈' 투톱에 밀려 후반전에 조커로 투입되었기 때문. 그러나 이 날 경기 2골로 팀 내 입지를 넓히면서 15일 아랍에미리트연합(UAE)전을 비롯 앞으로의 A매치 경기에서 꾸준히 기용될 것으로 보인다. 지난 두 시즌 동안 별 다른 기복없이 발전을 거듭했던 이근호였기에 그 꾸준함의 '결실'은 적절한 시기에 탐스러운 열매를 맺을 것으로 기대된다.
[사진=이근호, 박주영 (C) 대구FC, 대한축구협회 공식 홈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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